2021년08월07일 22번
[과목 구분 없음] (가)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? [2점]

- ① 이종무가 쓰시마 섬을 토벌하였다.
- ② 정문부가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하였다.
- ③ 배중손이 삼별초를 이끌고 몽골군과 싸웠다.
- ④ 최영이 군대를 지휘하여 홍건적을 물리쳤다.
(정답률: 52%)
문제 해설
정답> ②
'『징비록』이란 무엇인가? (가) 당시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. 이때의 화는 참혹하였다. 수십 일만에 삼도(三都)*를 잃고 임금께서 수도를 떠나 피란하였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어 '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가 남아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운 까닭이다. 그리고 나라를 생각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그치지 않았고,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명의 군대가 여러 차례 출동하였기 때문이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『징비록』은 서애 유성룡(1542~1607)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정황 등을 기록한 저술이다(국보 제132호). 따라서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'(가)'는 임진왜란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(1592.4~1598.11, 음력). 참고로 ‘징비’란 「시경(詩經)」의 소비편(小毖篇)의 '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(予其懲而毖後患)'는 구절에서 딴 것이다.
*삼도: 한성, 개성, 평양
정문부(1565~1624)가 (함경도 길주에서)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것은 임진왜란 초의 일이다.
오답 해설>
① 이종무(1360~1425)가 쓰시마섬을 토벌한 것은 조선 세종 원년인 1419년의 일이다.
③ 배중손(?~1271)이 삼별초를 이끌고 몽골군과 싸운 것은 고려 원종 11년인 1270년의 일이다(~1271, 이후 배중손이 전사하고 김방경이 삼별초를 제주도로 옮겨가 이끔).
④ 최영(1316~1388)이 군대를 지휘하여 (충남 홍산에서) 홍건적을 물리친 것은 고려 우왕 2년인 1376년의 일이다(홍산 대첩).
'『징비록』이란 무엇인가? (가) 당시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. 이때의 화는 참혹하였다. 수십 일만에 삼도(三都)*를 잃고 임금께서 수도를 떠나 피란하였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어 '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가 남아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운 까닭이다. 그리고 나라를 생각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그치지 않았고,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명의 군대가 여러 차례 출동하였기 때문이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『징비록』은 서애 유성룡(1542~1607)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정황 등을 기록한 저술이다(국보 제132호). 따라서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'(가)'는 임진왜란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(1592.4~1598.11, 음력). 참고로 ‘징비’란 「시경(詩經)」의 소비편(小毖篇)의 '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(予其懲而毖後患)'는 구절에서 딴 것이다.
*삼도: 한성, 개성, 평양
정문부(1565~1624)가 (함경도 길주에서)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것은 임진왜란 초의 일이다.
오답 해설>
① 이종무(1360~1425)가 쓰시마섬을 토벌한 것은 조선 세종 원년인 1419년의 일이다.
③ 배중손(?~1271)이 삼별초를 이끌고 몽골군과 싸운 것은 고려 원종 11년인 1270년의 일이다(~1271, 이후 배중손이 전사하고 김방경이 삼별초를 제주도로 옮겨가 이끔).
④ 최영(1316~1388)이 군대를 지휘하여 (충남 홍산에서) 홍건적을 물리친 것은 고려 우왕 2년인 1376년의 일이다(홍산 대첩).